우연히 회사 도서실에서 눈에 띄어 빌려 읽은 책. 머릿말의 다음 구절에서 확 끌어당김을 느꼈다.
단적으로 말해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이며 이공계는 우리의 수출을 주도하며 파이를 키워온 분야이다. 의사와 변호사는 파이를 키우기보다 나눠먹는 직업인데, 근본적으로 파이가 적으면 아무리 큰 몫을 차지해도 허기를 면하기 어렵다. 이공계 인재만이 큰 파이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요리사다.
하지만 TV를 보라. 드라마는 변호사 스토리가 주류이고, 쇼게스트로 의사만 부르면서, 뉴스시간에만 이공계를 살리잔다. 신문은 또 어떤가? 대통령과 맞장뜨려던 버릇없는 검사들을 정의의 사자로 변신시키고, 허구한 날 연예인 억대 몸값 기사를 대문짝만하게 내보내면서, 어쩌다 나오는 기획기사에서만 이공계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니, 시체말로 생쇼하고 있다.
진실로 이공계를 살리자는 뜻이 있기는 한 것인가. 자기네들이 샴페인 터뜨리며 파티할때, 공돌이는 돌쇠처럼 묵묵히 봉사해 달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데 어린 중고생들이 먼저 눈치를 채고 돌쇠 노릇은 안하겠다고 줄행랑 치니, 살살 달래보고 싶은 것이 아닐까.
실로 명쾌한 현실진단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저자는, 공돌이 문제의 역사, 한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주택문제, 결혼문제, 통근문제 등등.. 이공계 인간 노릇한지 20년이 넘은 나도 미처 몰랐거나 생각지 못했던 진단들이 튀어나오는데는 감탄할 정도.
하지만 진짜로 이 책에서 감탄할만한 점은, 저자가 문제의 해결 책임을 사회에만 돌리지 않고 – 그런 내용도 물론 있지만 – 공돌이들에게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젋은이여 짱돌을 들어라, 식이 아닌 건설적이고 사회적으로도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제 살길을 찾아라라는 식의 행동강령으로.
단점에 비해 장점은 별로 부각되고 있지 않은 공돌이기에, 저자는 공돌이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들과 그걸 최대화하는 방법들에 대해 얘기하며 책을 마친다. 세계적인 채용기회, 수학적 백그라운드에 기반한 인접 학문/기술 습득 능력, 프리랜서로의 활동가능성 등 말이다. (문제는, 내가 그럴만큼의 퀄리티가 되는 인재인가 하는 점인데.. 결국 그거야 각자 노력하는 수 밖에.)
책 뒤에는 한국의 과학/기술계의 내노라하는 인물들이 추천사를 쓰고 있다. 황우석 교수가 첫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조금 그렇지만, 그 외에도 진대제, 로버트 로플린, 오명, 임형규 등 개인적으로 존경할만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추천사를 썼다. 후배들에게 보내는 저자의 충고에 깊이 공감하는 듯.
물론 저자는 사회적으로도 여러가지 제안을 하고 있다. 대부분 동의.
- 석사 학위자에게 가장 유리하도록 기술사 제도의 활성화
- 의대 정원 확대
- 국가 주도로 고급 기술인력 수출
- 미국식이 아닌, 프랑스식 연구제도 도입
- 교수들에게나 혜택이 돌아가는 BK21 같은것 보다, 유학생이나 박사후 과정 학생의 해외지원 확대
이 책의 출판일은 2004년. 아직까지 물론 도입된 것은 없다. 하지만 사회는 사회고, 개인은 개인이다. 김국현님도 말씀하셨듯,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것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