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닥의 파산에 대한 이코노미스트의 기사. 디지탈 혁명에 대응하는 것은 밀려오는 츠나미에 대적하는 것과 같다, 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비장함 마저 느껴지는군요. 마지막 단락은 조금 눈물이 날 정도.
http://www.economist.com/node/21542796
코닥의 마지막 순간?
코닥은 거의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그 오랜 라이벌인 후지필름은 번성 중이다. 왜?
레닌은, 자본가들은 자기들을 목매달 밧줄이라도 기꺼이 팔 사람들이라고 비웃었다. 그가 정말 저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거기에는 한조각의 진실이 있다. 자본가들은 종종, 스스로의 비지니스를 망가뜨릴 기술을 발명하곤 한다.
코닥은 그 완벽한 예다. 코닥은 1975년에 최초의 디지탈 카메라를 만들었다. 그 기술과, 이후의 카메라 달린 스마트폰으로 인해, 코닥의 필름/카메라 제작 사업은 거의 망하게 되었다.
이상한 얘기같지만, 1880년에 설립되었을때 코닥은 그 시대의 구글이었다. 그 시절 코닥은 첨단 기술과 혁신적 마케팅으로 알려져 있었고, “버튼만 누르세요, 나머지는 저희가 합니다” 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1976년에는, 코닥은 미국에서 필름 시장의 90%와 카메라 시장의 85%를 장악하고 있었다. 90년대까지만해도, 코닥은 세계 5대 브랜드에 꼽히곤 했다.
그리고 나서, 디지탈 포토그래피와 스마트폰의 시대가 도래했다. 코닥의 매출은 1996년에 $16b로 피크를 찍었고, 이익은 $2.5b로 1999년이 최고였다. 2011년의 예상 매출은 $6.2b 이고, 분기손실은 $222m 일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지난 3년동안의 9번째 분기손실이다. 1988년 코닥의 고용자수는 145,000명 이상이었는데, 현재는 그 1/10 수준이다. 주가는 작년에 거의 90%가 빠졌다.
지난 수주간에 걸쳐 회사가 있는 Rochester에서는, 빨리 회사의 IP 자산을 팔지 않으면, 코닥은 도산할 것이라는 추측이 돌았다. 지난 10일의 발표 – 회사를 2개의 사업부로 재편성할 것이라는 것과, 애플과 HTC를 특허침해로 고소할 것이라는 것 – 는 낙관주의자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재편성은 Chapter11 bankruptcy를 위한 준비로도 해석할 수 있다.
코닥이 이렇게 고생하는 동안, 그의 오랜 라이벌인 후지필름은 꽤 잘나고 있다. 두 회사는 많은 점이 유사하다. 각자는 자신의 홈 마켓(코닥/미국, 후지/일본)에서 거의 독점에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1990년대의 미일간의 무역분쟁은 싼 일본 필름의 미국수입을 막기 위해서 발생했다.
두 회사 모두 그들의 전통적 사업영역이 사라져가는 것을 인지했다. 하지만 코닥은 적응에 실패한 반면, 후지필름은 자신을 굳건한 이익을 보는 회사로 변모시켰고, 그 결과 현재 후지필름의 시장가치는 $12.6b에 달한다. (코닥은 $220m.) 무엇이 그 둘을 이렇게 갈라놓았을까?
두 회사 모두 변화의 도래를 감지했다. 코닥의 전 경영진이자 현재 Rochester의 Simon 경영대학 교수인 Larry Matteson은, 1979년에 자신이 작성한 보고서를 기억하는데, 거기서 여러 마켓 세그먼트들 – 정부 정찰용, 프로 사진작가용, 대중용 – 이 어떻게 차례로, 필름에서 디지탈로 변해갈 것인지를 예측했다. 그는 그 변화가 2010년에 완료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실제와 몇년 차이나지 않는다.
후지필름 역시 늦어도 1980년초 경에는, 디지탈이라는 어두운 운명의 도래를 감지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세갈래의 전략을 세웠는데, 필름 사업에서 뽑아낼 수 있는한 최대의 돈을 뽑아낸다는 것, 디지탈로의 전환을 준비하는 것, 그리고 새로운 사업 라인을 만드는 것이다.
두 회사 모두 디지탈 포토그래피 자체는 그리 수지맞는 사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Matteson씨는 말하길, “현명한 경영진은, 1달러에서 70센트가 남는 필름사업에서, 많아야 5센트 남을까 말까한 디지탈 사업으로 서둘러 뛰어들지 않는게 좋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두 회사는 적응해야 했다. 코닥은 더 느렸다.
코닥의 문화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코닥의 여러 강점들 – 많은 연구 투자, 제조 능력, 지역사회와의 좋은 관계 – 에도 불구하고, 코닥은 만족스러운 독점자의 위치에 있었다. 후지필름은 1984년 LA 올림픽 스폰서를 차지함으로서 이런 약한 입지를 극복하였다. 이 스폰서십이, 후지필름의 싼 필름이 코닥의 홈마켓을 잠식하는것을 도왔다.
하바드 경영대학원의 Rosabeth Moss Kanter 교수는 코닥의 또다른 약점으로, 경영진이 “완전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다른 하이테크 기업의, 일단 만들어 팔면서 수정하는 방식의 사고를 하지 못한것”을 들었다. Rochester라는 코닥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는 한 도시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도 문제였다. Kanter교수는 거기 사는 코닥의 윗사람들은 회사에 대한 비평을 거의 듣지 못했다고 말한다. 코닥이 사업다각화를 하기로 결정했던 때에도 그 회사가 실제로 처음 다른 회사를 사기까지 수년이나 걸렸다. 코닥은 높은 평가를 받는 벤처캐피탈 회사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큰 돌파구를 만들만큼 큰 투자를 한적이 없었다고, Kanter 교수는 말한다.
하지만 운도 영향을 미쳤다. 코닥은 그들의 연구원들이 필름을 위해 만든 수천개의 화학제품들이 제약에도 쓰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코닥의 제약 부분은 별볼일 없었고, 1990년대에 팔리는 운명이 되었다.
후지필름은 다각화에 더 성공적이었다. 필름은 피부와 좀 비슷하다. 둘다 콜라겐이 포함되어 있다. 사진이 산화되어 흐려지듯이, 화장품 업체들은 피부 보호에 항산화 물질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후지필름의 20만개의 화학물질 보유고 중에서, 약 4천개의 물질이 항산화와 관련이 있다. 이에 후지는 ‘Astalift’라는 이름의 화장품 라인을 런칭했고, 현재 아시아에서 팔리고 있으며, 올해 유럽에 진출할 예정이다.
후지필름은 또한 그들의 필름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시장진출도 탐색했는데, LCD 스크린을 위한 보호필름 등이 그 예이다. 이 분야에, 후지는 2000년부터 $4b를 투자했는데, 성공적으로 투자를 회수했다. LCD의 시야각을 확장하는 필름의 경우, 후지필름은 100%의 마켓쉐어를 자랑한다.
1993~1999년까지의 코닥의 보스였던 George Fisher는, 코닥의 역량은 화학이 아니라 이미징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디지탈 카메라를 내 놓았고, 사진을 온라인에 올리고 공유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했다.
현명한 보스였다면 이런 아이디어를 페이스북 같은 것으로 진화시켰겠지만, Fisher는 그런 보스가 못 되었다. 그는 생산을 아웃소싱하지 못했는데, 만약 그랬다면 코닥은 더 민첩하고 생산적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또한 코닥의 ‘면도날’ 비지니스 모델을 잘 적용하지 못했다. 코닥은 싼 카메라를 팔고 소비자들이 비싼 필름을 많이 살 것이라고 기대했다. (질레트가 면도기가 아니라 면도날을 팔아 돈을 벌듯이.) 이 모델은 명백하게 디지탈 카메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닥은 결국 디지탈 카메라를 통해 괜찮은 비지니스를 구축했지만, 그것도 카메라폰의 도래에 따라 몇년 가지 않았다.
코닥은 또한 신흥 마켓의 흐름을 읽는대로 실패했다. 코닥은 중국의 새로운 중산층이 많은 필름을 구매할 것으로 예측했다. 단기간 동안은 그랬지만, 바로 그들은 디지탈 카메라로 옮겨가 버렸다. 카메라가 없던 많은 이들이, 필름 카메라는 건너뛰고 바로 디지탈 카메라로 가버린 것이다.
코닥의 리더십도 혼란스러웠다. CEO가 바뀔때마다 전략은 바뀌었다. 2005년에 집권한 최근의 CEO인 Antonio Perez는, 회사를 디지탈 프린팅 회사로 바꾸는데 집중했는데, 이는 그의 전 직장인 HP에서 배운 것이다. (코닥은 아직도 그게 살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회사의 거대한 지적자산을 현금화 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가 애플에 대한 고발이다.
후지필름에서도 기술 변화에 따라 내부적으로 격렬한 권력투쟁이 있었다. 처음에는 소비자용 필름 사업부 사람들이 지배했고, 그들은 다가오는 운명을 직시하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Shigetaka Komori 였고, 그는 그들이 디지탈의 맹공에 대한 대비에 게으르고 무책임했다라고 비난했다. 2000년에서 2003년에 걸쳐, 그는 빠르게 회사를 개편했다.
2000년부터 그는 40개의 회사에 $9b를 지불했고 비용과 인력을 삭감했다. 어떤때는 18개월 동안에 $3.3b을, 불필요한 배급망, 개발실, 관리자, 연구원 등을 정리하는데 사용하기도 했다. Komori씨는 “그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면 사업모델을 재구축할 수 밖에 없었죠” 라고 말한다.
이런 선제적인 행동은, 아무리 관대한 퇴직금이 동반된다고 하더라도, 일본 주식회사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일본 경영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Kenichi Ohmae는, 일본의 관리자들은 빠른 행동과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일 등에 익숙치 않다고 말한다.
이런 일들은, Komori씨의 선대 경영자 – 그 자신을 뽑은 사람 – 의 결정을 뒤업는 일이었고, 이는 일본에서는 큰 금기에 속한다. 그렇지만, Ohmae씨에 따르면, 일본 회사들의 장기적 특징 – 주주로 부터의 단기성과에 대한 압력이 적고, 막대한 현금보유가 가능한 – 이 Komori씨의 비전을 수행하는 것을 더 쉽게 했다고 한다. 미국의 주주들이라면 이렇게 참을성이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놀랍게도, 코닥은 변화를 회피하는 전형적인 일본 회사처럼 행동했고, 후지필름은 유연한 미국회사처럼 행동한 것이다.
Komori씨는 그의 존경할만한 경쟁자(=코닥)의 운명에 대해 슬픔을 느낀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또한, 코닥은 그들의 문제가 분명해진 시점까지도 자만하는 경향이 있었다고도 말한다. 그에 따르면, 코닥은 자신의 마케팅과 브랜드에 대해 너무 자신하는 나머지, 쉬운 길만을 택하려 했다는 것이다.
2000년대에, 코닥은 내부적으로 기술개발을 통해 신사업을 개척하려고 하지 않고, 이미 만들어진 사업을 사려고만 시도했다. 그리고 충분히 다각화 하는데도 실패했다. “코닥은 디지탈 회사가 되려고 했죠. 하지만 그건 코닥 같은 큰 회사를 지탱하기에는 작은 사업입니다” Komori씨의 말이다.
아마 사실은 단순히, 디지탈로의 변화가 그저 너무 큰 변화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아주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렇게 건너기 힘든 변화에 맞닥뜨린 다른 회사를 나는 본적이 없습니다” 라고 “Innovator’s dilemma”의 저자인 Clay Christensen은 말한다. “그건 너무도 근본적으로 다른 기술의 도래였으므로 기존 기술을 가지고 그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요.”
코닥의 실수는, DEC가 관리자들의 게으름으로 인해 개인용 컴퓨터의 도래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랑은 다르다. 그것은 마치 “츠나미가 오고 있는것을 보고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와 같다”고 Christensen은 말한다.
다른 산업계에서는 잘나가던 회사들이 더 작은 충격에 의해서도 무너지곤 한다고 그는 지적한다. 수십년전에 있던 316개의 백화점 체인 중에서, Dayton Hudson 만이 현대 사회에 적용했고, 그것도 단지 그 회사가 “Target”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큰 변화를 겪지 않은 산업 – 50년전으로부터 온 시간여행자라도 현대의 백화점이 그리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 에 ‘창조적 파괴’가 적용된 결과가 이 정도다.
코닥이 이런 현재의 불운을 피할 수 있었을까? 어떤 이들은 코닥이 스마트폰 카메라에서의 ‘Intel Inside’ 처럼 되었어야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위치는, 더 나은 지적자산을 가진 Canon과 Sony에게 더 가능성이 높은 것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다 그 위치에 오르지는 못했다.
사람과 달리, 이론적으로는 회사는 영원히 살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초기에 사라지는데, 그건 기업이라는 세상은 사회와 달리,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전장이기 때문이다. 후지필름은 새로운 전술을 익혔고 살아남았다. 2000년에 필름은 후지 이익의 60%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사실상 존재가 없다. 하지만 그들은 새로운 매출분야를 찾아냈다. 코닥은 이전의 다른 위대한 회사들처럼, 그저 자신의 길을 끝까지 간 것이다. 132년의 역사 후에 이제 그들은, 오랜 사진이 색이 바래듯, 사라질 운명으로 보인다.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Comment by Grek — February 15, 2012 @ 10:57 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