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마지막 날. 우연히 모 게시판에서 본 정보에 따라, 과천 국립과학관에서 하는 ‘SF과학영화제‘에 ‘왕립우주군‘을 보러 갔다. 대학때 처음 본 이후 여러번 보았지만, 아직도 그 압도적인 스케일이 머리에 남아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오랜만에 본 왕립우주군은 여전히 훌륭했지만, 역시 세월은 숨길 수 없는지 몇가지 단점들도 보였다.
우선 상영 상의 문제점. 일단은 화질부터 문제인데, 아무리 20년전 애니메이션이라지만 화질이 정말 그거밖에 안되는걸까? 그냥 DVD를 튼 것 같은 느낌이 들정도였다. (물론 스크린 크기를 생각하면 그럴리야 없겠지만.) 그리고 마지막 엔딩 크래딧을 잘라먹은것도 문제인데, 보통 극장에선 그리 까다롭지 않지만 비영리영화제에서 그러는 것은 좀 이해하기 힘들다.
작품상의 문제점도 여럿 눈에 띈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두 나라가 어떻게/왜 전쟁에 돌입하는지, 그 과정이 불분명한 것이다. 우주개발에 대항하는 두개의 힘으로 시민운동 및 로켓을 국가간의 전쟁에 사용하려는 군부가 제시되는데, 후자는 마지막이 될 때까지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교전국 중 한 나라는 그리 중요하게도 보지 않는 로켓을 위해서 전쟁을 한다는 상황이 좀 이해하기 힘들었다. 좀 더 전쟁에 돌입하기까지의 과정이 묘사되어야 했다.
내가 기억했던 것보다 훨씬 일본적인 영화였는데. (물론 이건 단점은 아니고.) 특히, 자신들만의 언어로 말하는 오네아미스의 황실인들은 당연 일본 천황가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고, 그들이 전쟁의 음모를 주도한다는 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이차대전의 천황책임론을 말하는 것 같아 흥미롭다. GAINAX 인간들이 좌파(일본적 의미에서)였던가? 그쪽 팬덤을 떠난지 좀 되어, 이젠 기억이 나지 않지만. ^^
그리고 빼놓을수 없는건 이 영화의 종교색. 이런 걸보고 감동받으면서도 내가 무신론자라는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여주가 남주의 행동의 모티베이션이 되는 것 외에, 이 영화에 종교가 필요한 이유는 분명치 않다. 아마도 마지막의 시로츠쿠의 메시지 낭독 씬을 위해서 집어넣었다는 것이 가장 그럴싸 한 답인 듯 하다. 시로츠쿠가 위성안에서 신을 얘기하지 않고 인본주의 메시지를 얘기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일반에게 받아들여지는 감동의 정도가 달랐겠지.
여러 단점들이 새롭게 눈에 띄기는 했지만, 마지막에는 역시 눈시울이 젖을 정도의 감동이었다. 요네하라 마리도 로켓의 발사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듯이, 로켓이란 사람들 속의 무언가를 자극하는 것이 있는 것 같다.